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르타뉴급 전함 (문단 편집) == 실전에서의 활약 == 한마디로 요약하면 [[후소급 전함|그냥 프랑스 최초의 슈퍼드레드노트]]라는 점이다. 드레드노트급 수준의 장갑에 포만 슈퍼드레드노트인 수준이었다. 동시기 전함과 비교할 경우 영국의 [[아이언 듀크급]]은 13.5인치(343mm) 주포 10문에 현측 12인치였으며 미국의 [[뉴욕급 전함|뉴욕급]]도 장갑은 아이언 듀크급, 주포는 14인치(356mm) 10문이었다. 독일의 [[쾨니히급 전함|쾨니히급]]은 주포는 비록 30,5cm 10문이었지만, 대신 15인치 주포도 막을 수 있는 현측 350mm의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. 브르타뉴급은 이렇게 체급 자체가 타국의 동급 전함들보다 한 단계 낮은 상황에서, 숫자로도 타 국가들보다 모자른 3척에 불과했다. 그러나 어쨌든 프랑스는 '자국도 슈퍼드레드노트를 보유했다!'를 선전했다. 1차 대전이 발발하자 1, 2번함 브르타뉴, 로렌은 지중해에 파견되어 [[오스트리아-헝가리]](이하 오헝) 해군과 싸우는 [[이탈리아 해군]]을 지원해주러 갔으며 3번함 프로방스는 영국과 독일에 질 수 없다고 함대 기함으로 활동했다.[* 나름 자존심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. 1916년에 브르타뉴급 전함 3척 다 취역했는데, 하필 이때 영국은 [[퀸 엘리자베스급 전함]]이, 독일은 [[바이에른급 전함]]이 등장한 뒤였다.] 아드리아해에서 브르타뉴급은... 한게 없었다. 당시 오헝과 이탈리아의 드레드노트 전함 보유수는 거의 비슷했고([[테게토프급 전함]] 4척 vs. [[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]] 3척, [[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]] 2척, [[단테 알리기에리급 전함]] 1척) 둘다 3연장 12인치 주포를 운용해서 화력도 비슷한 상황이었다.[* 왠지 모르지만 오헝의 테게토프급 전함(또는 비리부스 우니티스(Viribus Unitis)급)의 3연장은 송탄기가 2개밖에 없어서 반쪽짜리 3연장이라는 소문이 있는데, 참고로 이 3연장 포탑은 당시는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|오헝제국]]령이었던 체코의 슈코다사가 개발한 것이다. 이 슈코다사 포탑을 보고 배워서 3연장 포탑을 탑재한 전함이 [[러시아 제국]]의 [[강구트급 전함]]인데 강구트급 전함의 주포탑은 각포의 부앙각 조절을 따로따로 할 수 있었고 당연히 송탄기도 3개였다.] 당연히 양측의 세력이 비슷하다 보니 서로 간만 보고 있었는데, 이와중에 브르타뉴급이 온 것이다. 오헝은 독일처럼 해안포격-도주를 반복할 뿐 전면적인 교전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, 소형함간의 교전만 치열했다. 실제로 이탈리아와 오헝은 서로에게 한방을 먹여서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 2번함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[[테게토프급 전함]] 4번함 센트 이슈트반이 격침되었다.[*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완전히 침몰은 안됐지만 폐함 직전이라 해군군축때 고철로 만들어버린다.] 이런 상황이니 브르타뉴급도 쫄아서(...) 항구에서 놀다가 전쟁이 끝났다. 전후 [[워싱턴 해군 군축조약]]때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구제해주는 규칙 덕분에[* 뭐 두 나라 다 4연장포탑(프랑스)니 15인치 주포(이탈리아)니 했지만 완성을 못해서(...) 군축때 남들 배라도 줄이자는 심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스크랩했다.] 브르타뉴급은 어쨌든 넘사벽인 [[넬슨급 전함]]을 제외하면 주변에 대항할 만한 군함이 별로 없는 상황이 되었다.(영국은 예외로 치더라도) 당장 수가 모자른 판이라 쿠르베급에 당통급 프리드레드노트도 현역으로 굴리는 판이었으니 브르타뉴급는 1선급 전력으로 보존되고 있었다. 이후 [[됭케르크급 전함]]의 건조로 프랑스가 [[고속전함]]을 보유하자 1선에서 내려오나 싶었지만... 문제는 [[히틀러]]가 재무장을 시도하고 있다보니 그런 정세에서 브르타뉴급는 쉴 수가 없었다. 심지어 이번에는 [[파시스트]]가 집권한 이탈리아 탓에 지중해도 혼자 지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.[* 나중 일이었지만, [[무솔리니]]는 히틀러에 비하면 똘끼가 적어서 프랑스가 [[프랑스 침공|무너질 때]]까지 영국, 프랑스와의 외교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. 에티오피아 침공으로 외교적 고립을 초래했긴 하지만 영국이 1940년에 무솔리니에게 '[[제1차 세계대전|대전쟁]](The Great war)때 전우였으니 연합군으로 참전해 독일을 막읍시다.'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. 실제로 무솔리니는 저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했다.~~이기는 쪽에 붙어야 하거든~~] 브르타뉴급의 최후는 불우했다. 프랑스가 어쩌지도 못하고 [[프랑스 침공|독일의 침공]]에 당하자 영국이 [[캐터펄트 작전]]을 발동하며 프랑스 함대를 무력화 하겠다고 나온 것이다. 브르타뉴는 과거 함께 항해했던 [[후드(순양전함)|HMS 후드]], [[퀸 엘리자베스급 전함|HMS 밸리언트]], [[리벤지급 전함|HMS 레졸루션]]의 집중포화에 격침되었고 프로방스는 그대로 좌초했다.[* 이때 됭케르크는 좌초되었지만 이와중에 스트라스부르는 [[프렌드 실드|아군을 방패삼아]] 튀었다.][* 한편 브르타뉴는 처참하게 당해서 많은 전사자가 나왔는데, 이때 프랑스 국민들은 영국에 분노해서 [[진주만 공습|'브르타뉴를 잊지말자!']]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. 실제 [[횃불 작전]]때 비시프랑스군이 '나쁜 영국놈들이 오면 저항할거야.'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..] 프로방스는 어찌어찌 [[비시 프랑스]]가 건져 올렸지만 [[툴롱 프랑스 함대 자침]]때 결국 또다시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. 한편 로렌은 카사블랑카에 있어서 언니와 동생의 비극은 피했다. 마침 로렌은 금괴를 수송하고 있었고 이후 영국에게 접수되어 [[알렉산드리아(이집트)|알렉산드리아]] 항에 잡혀있다가 [[자유 프랑스]]가 [[북아프리카 전역]]이 종결되고 난 1943년, 자유 프랑스에게 [[리슐리외급 전함|리슐리외]]를 빌려가는 대신 로렌을 반환했다. 이후 [[용기병 작전]]때도 프랑스 대표로 참여했고 1953년까지 훈련함, 해상막사로 쓰이다가 퇴역, 스크랩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